할렐루야!!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오늘 묵상하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 23장 1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세상의 부유함, 세상의 높아짐, 소위 말하는 세상에서 잘나가는 것이 부러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분명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중요한 것을 알고는 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세상의 좋은 것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눈 앞에 현실을 보면, 힘과 권력, 강력한 ‘부’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세상의 것에 우리의 마음과 눈이 덮여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부의 상징이었던 나라, 두로와 시돈이 있습니다. 일찍부터 지중해의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있었던 두로와 시돈은 그당시 최고의 권력이었던 애굽, 앗수르, 바빌론의 권력 앞에서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부의 힘으로 자신들의 지역을 지켜냈습니다. 바다와 바위와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던 천혜요새와 같은 두로는 돈의 힘까지 등에 업고 결코 무너져 내릴 것 같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나라들은 애굽이나 앗수르처럼 강대국은 만들 수 없을지라도, 두로와 시돈처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라도 가지고 싶어했습니다. 이와 비교해 보았을 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권력가나 세력가는 아닐지라도, 스스로를 만족할 만한 부유함과 편리함을 추구합니다. 때로는 그 마음이 커져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앞에서도 행복과 기쁨을 가리워버릴 때도 있습니다. 오늘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에도 현실적 상황에 갇혀 불행하다고 여기고 낙심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았던 두로와 시돈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두로와 시돈이 심판을 받았던 이유는 단순히 부를 축척했기 때문 만은 아니었습니다. 두로와 시돈에는 ‘엣바알’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바알의 제사장이었던 엣바알은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두로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딸 이세벨은 오므리 왕조였던 아합 왕과 결혼을 하고 이스라엘 지역을 바알을 섬기도록 이끄는 일에 앞장 선 곳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두로와 시돈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인 바알을 섬겼고, 그랬기에 ‘부’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 여겼던 도시였습니다. 부가 전부인 것처럼 사람들을 미혹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앞에 보인 부의 힘, ‘바알’이라는 신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워버렸습니다.
혹 우리의 삶에 기쁨과 감사가 사라졌다면, 우리를 가리운 것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은혜와 사랑, 기쁨과 감사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통하여 이루셨습니다. 부가 가진 힘을 무시하며 살 수 없지만, 부가 하나님보다 우선시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의 우선 순위에서 늘 하나님이 먼저 된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까마귀를 보내서라도 우리를 먹이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오늘도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 나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