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도 성령이 충만하여 가정과 일터, 거하고 관계하는 모든 곳과 사람들마다 은혜와 사랑이 넘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오늘 묵상하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 전서 11장 17절에서 3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성만찬은 식사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고, 식사는 ‘애찬’, ‘아가페’라고 부르며 성찬과 예찬을 함께 함으로 교회 안에 모든 교제와 사랑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2장 46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처럼, 성만찬을 통해 예수님을 기념하고 예배하고 찬양했습니다. 성찬은 감사의 표시였고, 모든 성도들이 교제할 때에 기쁨과 순전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함께 예배하며 교제를 나눌 때에 기쁨이 충만하여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초대 교회의 상황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들이 모일 때 기쁨이 충만했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 예배를 통하여 임하였고, 또한 교제할 때에 모두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주며, 함께 기도함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를 통하여, 또한 지금 함께 모인 가정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사랑이 충만하여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하지만, 이렇게 소중하고 기쁜 성찬이 고린도 교회에서 오히려 갈등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우상숭배가 가득했던 고린도 지역에서는 우상에게 바치는 커다란 축제가 많았으며 사람들이 먹는 고기나 음식도 대부분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들이었습니다. 사회 생활과 우상 숭배 의식이 분리되지 않아서, 교회 안에서도 이교도의 관행에 영향을 받게 되었고, 성찬과 애찬도 이교도의 관습과 결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자들은 성찬과 애찬을 위하여 음식을 풍성하게 준비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은 조금 가지고 오거나, 못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찬과 애찬 속에서는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함께 참여하며 참 기쁨의 예식으로 오직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기쁨의 자리였지만, 이교도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헬라인들은 우상 축제에서 부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온 풍성한 음식을 그들끼리 먼저 먹어버리고, 남을 음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던지, 아예 베풀지 않아서 그들에게 굴욕감을 주었는데, 고린도 교회 안에서도 이런 풍습이 들어와 참 사랑과 교제의 성찬과 애찬의 의미를 없애고, 굴욕과 계층, 시기와 멸시를 만들어 교회 안에서 편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부자들은 사랑의 잔치를 비열하게 악용하여 가난한 형제들에게 굴욕과 상처를 안겨 주는 수단으로 만들었고, 그로 인하여 예수님의 이름이 무너지고 영적으로 타락해버리는 모습을 보며, 바울은 예배를 드리고 있음에도 고린도 교회를 도저히 칭찬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주 안에서 서로 한 가족이 되고 서로 모일 때마다 기쁨이 충만했던 모습이 점차 사라진 교회, 혹 지금의 많은 교회의 모습은 아닌지, 우리 교회의 모습은 아닌지, 우리 가정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며,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이전까지 사랑하지 못하고 함께 기쁨에 참여하지 못한 지난 날을 우리는 온전히 주님 앞에 회개하고, 사랑의 마음을 간구하며, 우리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기쁨으로 나누며, 그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차고 넘치는 생명의 물을 ‘나’라는 연못에 가두어 혼자 잘 사는 것에 관심을 두지 말고, 생명수의 강이 되어 우리로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은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구하는 우리 모두에게 충만한 성령님의 임재와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사랑이 우리와 가정과 교회와, 또한 우리가 걸어가는 걸음 걸음마다 나타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오늘도 서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행복한 삶을 사세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